병렬 OS

컴퓨터 한대가 아닌 여러대의 컴퓨터를 하나처럼 사용하는 방식.
아니 더 나아가 여러대의 컴퓨터를 여러대 처럼 쓸 수 있는 OS.
뭔 미친 말인가!!!!!

요새 원격 컴퓨터를 사용하는 목적은 사실 더이상 원격을 넘어서 리모트 컴퓨터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다. 컴퓨터 바로 옆 쇼파에 앉아, 침대에 누워 동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고 웹서핑을 한다. 그러면서 포스트PC로 한계가 있는 대용량처리는 원격으로 간단하게 PC에 걸어 놓는다. 사실 포스트 PC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방식은 여러가지로 귀찮다. 포스트PC에서 대용량 파일의다운을 받으려 할때 생기는 문제도 마찬가지. 사실 그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클라우드 스토리지가 생겨났고 또 클라우드 프로세싱(킨들 파이어 처럼..)도 생겨났지만 PC와 클라우드, 포스트 PC간의 연동방식은 아직 보완할 점이 많은 것 같다.
가장 큰 것은 PC-포스트PC간의 직접 연동이 '원격 연결'이라는 다른 용도의 기술을 차용해서 쓰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다.
유동적이라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어플리케이션 간의 빠른 연동을 지원 할 수 있는 각 OS레벨의 개념이 추가된다면 꾀나 유용하지 않을 까.
PC에서 원격으로 포스트PC의 어플을 이용한다던가, 포스트PC의 형태로 모방된 PC의 어플의 이용.
더 나아가 하나의 메인프레임PC를 여러 포스트PC가 리모트 형태로 사용한다면, 예를들어 회의시간에 각자의 포스트PC를 가지고 대형화면에 걸린 프리젠테이션이나 회의록을 같이 수정 조작하며 회의를 할 수 있는 형태.
네트워크의 준비된 어딘가 뿐만아니라 바로 옆의 컴퓨터마저도 거리낌 없이 사용 할 수 있는 레벨이 바로 완성된 클라우드 시스템이 아닐까.

by Queuez | 2011/12/12 16:47 | 프로그램과의 대화 | 트랙백 | 덧글(0)

정치적 애자일

기민당 선언.
절차와 권력에 앞서 개성과 화합을\
실리적인 공약에 앞서 실천적인 공약을\
공약에 앞서 시민과의 대화를\
계획실천에 앞서 변화에의 대응을\
우리는 물론 앞의 가치들에도 무게를 두지만, 후자의 가치에 더 큰 무게를 둔다.

by Queuez | 2011/12/08 16:41 | 일상의 대화 | 트랙백 | 덧글(0)

어느 엑스파일 이야기

물체가 내 뒤에서 날아와 내 앞에, 내 시야에 있는 사람에게 날아올 때, 종종 그것을 내가 받아낸다. 상대의 눈동작, 몸동작, 손동작으로 미루어 잡아낸다.
의식하지도 않고 (할 시간도 없이) 반사적으로 잡아내긴 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내 스스로도 의문. 보통 앞에 있는 사람은 몸치 여성. 동작이 크기때문에 쉽게 반응하는 듯 싶다.
엑스파일같은 공상과학 이야기 같이 들리지만 진짜로 가끔씩 발동되는걸 나는 스스로 인지할 수 있으니, 뭐, 사실이다.

오래전에 고등학교 총동창회에서도 그 스킬이 한번 사용된 적이 있는데, 그걸 지나고 한참후에 들어서 재미있는 가능성이 떠올랐다.
고등학교때 누군가들이 의도적으로 내 앞에서 물건을 주고받는 실험으로 그 능력을 강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
이거이거 점점 엑스파일화 되어 가는 것 같지만 ....

확실하지만 않지만 남여공학/남녀층분리된 특이한 고교환경에서 그 스킬이 꽤나 자주 발생했었기도 하고 그 동창회에서도 스킬 발동전에 누군가 자꾸 열쇠를 주고받으려다 떨구는 모습이 기억에 있고....

by Queuez | 2011/12/02 13:02 | 일상의 대화 | 트랙백 | 덧글(0)

권력의 이동

엘빈토플러는 대략 이십년 쯤 전부터 권력은 자본에서 지식과 정보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회주의 공산체제와의 경쟁에서 이긴 자유주의 자본경제체제
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를 대표하는 미국이나 한국, 더 나아가 세계경제 자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그렇다고 현제의 문제들이 자본권력이 해체되며 발생하는 문제라기 보다, 자본권력이 강화되며 변질되어 가면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다.
하지만 이 강화와 변질의 원인을 단순한 이기심, 욕망이라기보다 해체의 위기감이라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각박해져 가는 것을 달리보면 그만큼 그 권력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고 그에 대한 대안을 단순히 사회주의라고 말하는 건 무리다.
생산수단의 공유라는 인식은, 초기 산업혁명 시대에나 가능 했을지도 모르지만 현대에선 무의미하다.
현대의 재화는 생산수단에 의해서 찍어져 나오는 단순한 농축산품이나 공산품의 개념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극간이 있기 때문이다.
장치산업이라 불리는 산업들에서 조차도 철 지난 장비들은 애물단지가 되어버린다.
단순한 물량의 처리용량의 경쟁을 넘어서 결과물의 순도나 정밀도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더라도 재화와 권력은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정보와 지식의 권력.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강세를 보면 엘빈 토플러의 말이 틀린말도 아닌 것 같다.
이들이 주는 메세지중 하나는 관료제가 문제라는 것이다.
관료제는 개인의 목표와 일을 추상화시킴으로써 창의성과 생산력을 경직시킨다.
애플과 구글은 관료제를 각각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이를 파괴하여 해법을 찾았다.

글쎄, 국가체제로서 그러한 예는 없지만 사실 문제는 관료제가 아닐까?
무언가 변질되어가는 오늘날의 문제는 자유주의, 사회주의,민주주의......사실 그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무언가에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주식시장의 문제 //이건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인거 같은데?
합법적인 도박시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주식시장. 회사가 망하건 흥하건, 베팅하기에 따라 돈을 벌 수 있는 구조.
하지만 문제는 그런 이중적인 돈의 획득구조나 그 이기심이 아니다.
반대로, 문제는 그 구조속에서 돈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더 나아가 잃은 돈들은 회수할 수 없는 돈들이기 때문이다.
주식에서 돈 잃는 건 한순간이다. 잃은 사람이 어떻게 되느냐? 신용불량자가 되어 증발한다. 잃은 돈을 갚느냐? 갚으면 신용불량자라고 할 수 없지.
못 갚는 돈이 있으면, 못 받는 돈이 있어야 하는데, 주식시장과 신용회사들은 이들을 효과적으로 숨긴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수할 수 없는 돈들이, 주식 시장에서 만들어진다. 그 갚을 길 없는 돈들이 거품을 만들어 낸다.

/*애자일 : 내가 아는 탈관료제.
스크럼이니 프랙티스니를 떠나서, 기본 철학은 관료제에 대한 대안을 생각하는 것.
소프트웨어 산업의 특수함: 장치산업이 꽤나 아니기에 다양한 의미에서 유동적이라는 특징.
그 특징에서만 가능한 가능성일지도 모르지만. */

by Queuez | 2011/11/24 03:28 | 내면의 대화 | 트랙백 | 덧글(0)

siri의 미래. iPod

Siri는 아직 베타딱지를 붙이고 4S에서만 동작하며 재미있게 농담따먹기 하는 녀석이지만,
만약 그게 약간 무뚝뚝한 형태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다운그레이드 되어 클라우드에서 약간만 벗어나 단말기 안에서 동작할 수준이 된다면,  
그땐 정말 머리가 쭈뼛쭈뼛하게 될거다. 

오래 전 애플 키노트에서 Siri이전의 음성인식 소프트웨어가 이야기 된 적이 있다.

그때 언급된 기기는 맥도, 아이폰도 아니었다.
아이팟. 그중에서도 가장 조그마한 아이팟,
아이팟 셔플이었다.

너무 조그마해 버튼 너댓개를 겨우 쑤셔넣고, 디스플레이장치까지 제거한 초소형 기기.
거의 전화기 ARS 수준의 간단한 소프트웨어였지만, 
애플의 음성인식 프로젝트는 거기서 부터 시작해 Siri-Beta까지 왔다.

그 Siri-Beta가 다시 셔플로 돌아간다면, 
그땐 정말 상상할 수준을 넘어선 무시무시한 음악기기로 재탄생 하지 않을까?

"운동 시작할건데, 선곡 부탁해."
"Siri야 우울하다. 분위기좀 잡아줘."

by Queuez | 2011/10/22 17:35 | 프로그램과의 대화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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